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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신뢰와 커뮤니케이션의 붕괴

중년가비김 2024. 5. 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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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부산지역 일간신문 국제신문에 필자가 게재한 칼럼입니다(2016. 11.7)

 

"이게 나라냐." 지난 주말 전국의 거리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외친 구호다. 매일 쏟아지는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관련 뉴스를 접하는 국민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착잡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최순실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될 때마다 제기된 대부분의 의혹이 속속 사실로 밝혀지는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공적 시스템의 붕괴와 다름없다. 더구나 공적 시스템을 공정하게 운영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은 대통령이 사적인 관계로 연결된 외부인으로부터 조언을 구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장면은 사뭇 충격적이다.


광화문 촛불집회(출처: 위키피디아)



최근 갤럽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에서 지지율 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더구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인 응답이 89%에 달하고, 2030 세대의 지지율은 1%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동력인 권위와 도덕성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수치는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비판만을 단지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공적 시스템 운영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합리성, 공정성, 투명성이 완전히 무시되고 짓밟힌 것에 대하여 국민이 표출하는 분노지수다.

많은 국민은 어떻게 박 대통령이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 허구로 밝혀졌지만 정치인으로서 박근혜는 '신뢰와 원칙'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신뢰와 원칙을 국민에게 강요할 뿐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적용하지 못한 채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지난 3년9개월 통치 기간 불통의 정치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한 기자회견 수는 총 5회에 그친다. 연평균 1.25회이며 그나마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의 연평균 기자회견은 20회 이상이고 기자들의 질문은 거의 무제한으로 보장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총 150여 회씩 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여 회를 기록했다. 청와대의 수석과 장관, 즉 공적 라인에 있는 전문가들과의 소통 부재 역시 심각했다. 조윤선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11개월 재직할 당시 대통령과 단 한 번의 독대도 없었다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의 내용과 형식은 박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현실 인식의 수준 미흡과 소통 의지 부재를 재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사실 이번 국정 농단 사건 이후가 더욱 걱정이다. 사회의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구성원들 간의 연대감 형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회통합지표 자료를 분석하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회적 지원 네트워크 부문에서 10점 만점에 0.2점을 받아 36개 국가 중 꼴찌를 했다. 즉, "만약 당신이 곤경에 처해 도움받기를 원할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비중이 가장 낮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타인에 대한 신뢰도 역시 23위에 머물렀고,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는 27%로 33위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사회적 복지 안전망이 미비하고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상태에서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뿐만 아니라 사적인 네트워크 역시 믿을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적 풍토가 팽배한 이 시점에서 이번 국정 농단 게이트가 국민이 납득할 수준으로 처리되지 못하면 그 후과(後果)는 지대할 것이 뻔하다.

박 대통령은 2차 사과 회견에서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을 꺼뜨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행여 경제적 위기 상황에 기대어 현재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꼼수가 아니길 진정 바란다. 마침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경제적 성장동력을 재점화하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감을 높이고 공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국민의 자괴감을 치유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신속한 정치적 조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특정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이고 스스로의 다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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